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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네는 런던의 겨울을 좋아했다는데 - 조민진
    책/읽고난 후 2020. 1. 11. 00:01

    지금은 닫아버린 SNS를 한창하던 날들에 이 책의 글귀를 자주 봤다. 볼 때는 좋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한동안 책과 글에서 멀어졌던 2019년을 보내며 특별히 기록하거나 찾지 않았다. 그러다 회사에서 지쳤던 지난 12월에 이 책을 찾은 이유는 언젠가 본 적이 있는 책 제목과 그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물론, 책 표지도.

    겨울에 태어난 나는 여름여자였기에 몇 년 전부터 겨울을 피해다닐 생각만 했다. 그런데 그 겨울을 피해 또 다른 겨울을 좋아한다는 이 책 제목이 모네와 런던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림을 동경하고 해리포터와 그리니치 천문대의 런던은 러브액츄얼리의 배경이 되는 곳인데 꼭 가고 싶은 곳은 아니었지만 언젠가 가보고 싶던 곳이었다. 그 곳의 모네라니,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책의 장르와 내용, 작가가 누구인지 전혀 몰랐던 것을 감안하면 책 제목은 정말 중요하다.

     

    책을 한 장 넘기면 내가 예찬했던 책 제목과 함께 "좋은 것들을 모으러 떠난 1년"이라는 부제가 함께 있다. 사실, 책장을 덮고 본 이 부제가 고등학교 때 그렇게 배운 이 책의 주제가 아닐까 한다. 내 취향을 잘 알고, 나를 알고, 그리고 나를 충전하고 내가 살아갈 힘을 주는 시간.

     


    1부. 오늘, 그리고 여기

    런던 카나리워프에서 삶의 쉼표를 찍다. "더 잘 살기 위해서는 진정한 내 모습을 잘 아는게 중요한 법. ...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에 애정을 쏟아보고 싶었다. 좋은 걸 최대한 모아서 최대한 행복하게 살아야지 결심했다."

    테이트모던에서 피카소의 꿈을 보다. "'여기가 런던이구나'하고 실감했다. 호사를 누리고 있다고, 진심으로 행복하다고 느꼈다. ... 나는 계속 꿈을 꾸고 싶다."

    시간과 의미는 비례한다. "나는 짧고 굵은 집중의 효율보다는 긴 시간을 오래 투자하는 끈기를 더 믿는 편이다. ... 일이든, 놀이든 사람이든 어쩌면 우리는 시간을 투자하는 만큼 더 좋아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오래 추억하고 평생 사랑하고 싶어서 나는 그림을 보는 일에 아낌없이 시간을 투자했다.", "... 일이 아닌 취미를 즐기고 있어서 더욱 빛났던 것일까. ...", "런던에 사는 동안 내게 소중해진 그림들이 여럿 생겼다. 그림을 보고 알아가는 데 시간을 많이 투자했기 때문이다."

    가장 비극적인 왕의 마지막 순간. "가끔 이렇게 사람들이 덜 찾는 곳을 혼자 방문하면 뿌듯한 기분이 든다."


    1부. 오늘, 그리고 여기는 런던에 막 도착한 이야기다. 런던에서 시작하고, 새로운 1년을 시작하며 그 마음을 가득담은 시작에 대한 이야기다. 공감도 하고, 지난 내 여행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힘들었던 지난 2019년을 마무리 짓고 약 한 달간의 휴식아닌 휴식을 맞게되며 나도 비슷한 마음이었다.(이래서 내가 사고, 읽은 책은 그 때 나를 보여준다는 말에 동의한다.)

    작가는 런던에서의 시작하며 결심했지만, 일상과 같은 장소에 있는 나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작가의 말이 동기가 되어 나를 새로고침하고 있다. 지금 더 잘 살고, 앞으로 더 잘 살기 위해서 나를 잘 알기 위해 더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시간을 많이 투자하기로 했다. 또한, 나 역시 끈기있게 오래 하는 장점이 있는 사람이다. 우리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열심인 표정으로 달리기를 하지만 현실은 꼴찌인 초등학교 1학년 때의 나를 25년도 훌쩍 지난 지금도 놀리곤 한다. 나는 단거리에 약했다. 일을 하다보니 노하우가 생겨 짧은 시간에 집중하여 일을 끝내고 생긴 여유시간을 즐기는 스킬(?) 같은 것이 생기기는 했지만 여전히 단거리에 약하다. 그런 내가 나를 잘 알게 되면서 시작한 취미가 마라톤이다. 1년에 4~5번 10km 마라톤을 즐기는 정도이지만 이런 나를 잘 알고, 받아들이고, 익숙해지면서 그간 어려웠던 목표에 도전할 수 있었다. 내가 그런 사람이고, 또 그래서 살아온 내 방식의 결과들이 있으니 나는 끈기를 믿는 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나의 장점을 조금 더 잘 쓰기로 했다. 취향이 취미가 되는 것에도 노력이 필요하니 이제 더 오래 빛나고 채워진 삶을 위해서 내 취미에도 시간을 많이 투자하기로 다짐했다. 이 한 달간의 시간이 끝나더라도 아낌없이 시간을 투자하고, 내가 나의 취향에 시간을 투자하며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기로 계속 다짐했다.

     


    2부. 작은 도전, 새로운 생각

    다리 근육이 튼튼해진다. 나는 나의 보스다. "위기는 기회다. 나는 죽기 살기로 지도를 보고 길을 찾는 연습을 하고 또 했다. 스스로 채찍질하듯 피곤해도 귀찮아도 매일 낯선 곳을 정해서 찾아다녔다.", "걸으면서 주위를 둘러보는 게 여행이었고 공부였기 때문이다.", "걸으면 많은 게 좋아졌다. 가끔씩 우울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 있었고, 낯선 곳을 찾아내는 성취감도 생겼으며, 글쓰기에 좋은 소재나 새로운 계획들이 번뜩 떠오르기도 했다. ... 내가 가는 길을 스스로 찾는 건 내가 나를 믿는 일이었다. 나는 길치가 아니었다. 단지 스스로 지도를 읽겠다고 마음먹지 않았을 뿐.", "I walk so much that my calf muscles have become strong and well defined. ... I am the boss of me."

    아마추어 화가를 꿈꾸다. "그림을 그리는 순간만큼은 잡념 없이 오로지 현재에 몰두해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는 것도 좋았다. 혹시 언젠가 나도 스스로를 '아마추어 화가'라고 부르는 날이올까, 꿈꿔본다."

    똑똑하게 먹는 법. "술은 런던에서 여전히 '가장 보편적인 쾌락'이다.", "글을 쓰는 지금도 레드와인을 홀짝이고 있다. 와인은 자판을 두드리는 원동력이 된다.", "인간의 뇌는 우리가 먹은 것들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음식은 단순히 우리의 기분이나 생각뿐만 아니라 우리가 나이 들어가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상상력을 발휘해 앵무새를 살리자. "막상 내가 하던 일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게 되니 그동안 내가 갇혀 있던 세계에서 빠져나와야 한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다."

    감당할 수 있는 사치, 15파운드짜리 커피 한 잔. "15파운드짜리 커피 한 잔의 사치로 나는 완벽한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어포더블'한 사치가 모여서 결국 더 좋은 인생이 되는 게 아닐까."

    르느아르 그림 속 그녀처럼. "시간이 지나면 런던에서 혼자 오페라를 봤던 추억도 새록새록 떠오르겠지. 그렇게 따져보니 돈이 아깝지는 않다. 다음에 <라 트라비아타>를 보게 되면 오페라가 더 좋아질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취미와 취향은 만들어가는 것. 언젠가는 르누아르 그림 속 여인처럼 근사하게 차려입고 오페라를 보러가고 싶다.


    재미있게 읽고, 최근의 나를 생각한 장이다. 특히, 영어로 쓴 저 글귀는 작가가 어느 엽서 뒤에 적혀 있는 또 이름 모를 작가의 글귀를 적어둔 것인데 지금 내 휴대폰 배경화면에 적어둔 글귀이다. 나는 운동을 좋아했지만 행동보다 말이 매우 앞서는 사람이었고, 트레킹과 하이킹 역시 그 중의 하나였다. 그러던 내가 2019년을 운동이라는 목표를 정하고 하정우 책을 보면서 걷기 열풍에 함께했다. 체육을 전공한 지인들도 오래 걷는 것이 다이어트 하는 데 효과가 없다고 시간 낭비라고 했지만 내 걷기의 목표는 다이어트가 아니었다. 걷기 시작한 나는 걷는 행위 자체가 좋았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고, 크지는 않지만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작은 것이었고, 또 그 것이 내가 건강하다는 것의 증표였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걷는 행위의 또 다른 부분을 봤다. 내가 못간다고 했던 곳들, 다시 말해 못한다고 했던 것들 역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겠다고 마음 먹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걷기'라는 행위가 오랫동안 마음 속에만 머물다가 작년에서야 나의 수면위로 드러난 것처럼 아직 마음 먹지 않은 수 많은 것들이 내게 있다. 그리고 계속 읽으며, 계속 마음먹기를 생각했다. 내가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생각도 계속 하지만 정작 '마음 먹지 않은 것', 글 쓰기.

    새로운 나의 취향인 와인이라는 어프더블한 사치를 하며 더 좋은 인생을 만들기 위해 글 쓰기를 마음 먹었다. 그리고 그것에 더 열심이기로 또 다짐했다. 그것들이 모이면 새로운 힘이 될 것임을 믿기에. 그러다 보면 어느 새 나도 아마추어 작가라고 부를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3부. 좋은 걸 모아서, 행복하게

    런던에서의 루틴. "런던에서는 의무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일정 같은 건 없었지만 나는 스스로 지킬 수밖에 없는 일정들을 만들었다.", "일하기 때문에 휴식이 좋듯, 넘치는 자유시간을 좋아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계획에 구속되는 시간이 필요했다.", "갈망하고 동경하는 데 그쳤던 좋은 것들을 모아 내 취향도 한층 견고해졌다."

    무거워도 갖고 싶은 책. "설렁 현실이 미처 욕망을 따라가지 못하더라도 꿈꾸는 일마저 거두고 싶진 않다. 그래서 나는 언제 어디서나 계속 책을 산다."


    2부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들을 이야기했다면, 3부는 그것에 단단함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것의 처음으로 루틴을 이야기하는데 나는 이 소재가 퍽이나 마음에 들고, 지금도 든다. 제주도에서 한달살이를 하는 동안 없던 내 루틴은 나를 얼마나 더 우울하게 만들었는지 기억이 났기 때문일까, 아니면 지금 시간의 자유가 주어져서 이것이 더 와닿았을까. 인내하고 참고 끈기를 갖는 것에 강점이 있는 나는 일상이나 루틴을 소중하게 여기는 편이기는 하다. 그래서 늦게 자거나 늦게 일어나는 것에도 제한 시간을 정해두고, 시간을 그냥 보내기 보다는 해야할 무엇인가를 계속 만들고 이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 데 시간을 쓰는 편이다. 그리고 그것이 달콤한 자유시간을 보상해준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도 하고, 스스로 계획하는 만큼 그것을 잘 즐길 수 있다는 것도 너무 잘 안다.

    런던이라는 장소의 변화가 동기가 되어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기도 하고, 또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나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는 계기가 된다. 나는 그런 장소의 변화는 어렵지만 지금은 시간적으로 조금 여유가 있기에 이것을 동기로 이 휴식시간을 루틴하게 보내기로 했다. 이러한 루틴이 나를 지지하는 힘이 될 것을 믿는다. 그리고 늦게 자는 것보다 새벽에 일어나는 일상이 내게는 나를 더 채우기에 적합한 방식이므로 그것도 노력하기로 했다.

     


    4부. 꿈꾸는 삶

    고독해야 알게 된다. "화려한 곳에서 고독을 느낄 때 그 고독은 더 크게 다가온다. 내가 있는 곳은 화려하지만 고독한 나는 그렇지 않아 이질감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래, 나아져.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뭘 원하는지 더 많이 알게 될수록, 주변 상황에 흔들리는 일이 적어지지. ... 고독해야 자신에 대해서 알게 된다. 타인의 마음도 헤아리게 된다."

    타인의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다면. "타인의 이타심을 기대하며 살긴 하지만, 정말 행복하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자신에게 희망을 품을 수 있어야 한다.", "더 나은 걸 계속 기대할 수 있는 삶이 좋다. 현재에 만족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현재에 충실하기 위해서다."

    당신은 당신이 누군지 알죠. "너무 좋아, 너무 예뻐, 너무 맛있어. 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질 때 더 행복해진다. 작은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면 그 의미가 곧 행복이 된다."


    30대가 되면서 내게 유난히 힘든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이것보다 더 힘든 일이 없을 정도로 너무 힘들었다고 생각하면, 내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그보다 더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났다. 애써 그것을 해결하고 나면 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 일어났고, 사건과 사고, 그리고 수습의 연속이었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울었다고 말한 내 친한 친구가 알고 있는 일들은 빙산의 일각이었고, 이런 말로 표현하기에 파도와 쓰나미의 차이정도였다. 그 과정에서 나를 감당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 고독과 심리학이다. 나를 알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았고, 그렇게 알게 된 나를 수용하는 데 더 오래걸렸다. 그리고 주변의 소리에 덜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감정의 파도는 잔잔해졌고, 소용돌이에도 크게 요동치지 않으며 마음의 근육같은 것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나는 나와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즐겁고 소중해졌다. 내 취향을 알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고, 그것을 할 때면 그 전보다 더 행복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라는 것도 너무 잘 알게 된 시간이었다.

    책에서도 나왔지만,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정말 지긋지긋하게 들었고, 힘든 시절에 이 말이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면 그 위기가 기회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람은 합리화하는 동물이니 또 자기식대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정신승리한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면 그만인 것이 인생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지금도 이 말이 50%는 넘었지만 100%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다행인 것은 서른이 될 때까지 잘 알지 못했던 나를, 마흔이 되도 모를 뻔 했던 나를 깊게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되었다고 생각한다. 여러 사건들을 하나 하나 지나고 치유하면서 나는 정말 많이 성숙해졌다. 마음 속에만 있던 것들을 행동으로 할 수 있게 되었으며, 맴돌지 않고 작지만 분명한 한 걸음, 한 걸음을 걷고 있음도 자각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기도 한 지라, 삶이 바쁘고 퍽퍽하다보면 애써 어렵게 깨달은 것들을 잊고 허덕이기 마련인데 내 작은 생각과 행동에 기쁨을 느끼고 소중하게 생각하기로 결심을 하게 한 이 책에 감사하다. 휴식이 되었고, 또 힘이 되었다. 12월과 1월을 보내기에 너무 완벽한 책이다. 더 잘 살기로 결심했을 때, 아니면 결심하기에 마음에 잘 스며드는 책이다. 작가가 고맙다. 이런 생각을 하고, 책을 써줘서. 오랜만에 꼼꼼하게 읽은 에세이로 따뜻함이 꽉 채워진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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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de by Jaimie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