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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흰 머리카락
    해지 생각/일기장 2018. 8. 26. 22:20

    오늘 동생이 흰 머리카락을 뽑아줬다. 그 동안 보이는 부분은 내가 뽑았는데 오늘은 보이지 않는 머리 뒤통수 쪽을 집중적으로 뽑았다. 오래 걸린 것도 아닌데 흰 머리카락들이 여러개 뽑힌 걸 보니 괜히 마음이 울적했다.
    나이 드는 것에 슬퍼하거나 낙심하거나 또는 우울하다거나 그런 것 없이 살았다. 어른들이 마냥 좋게 보는 20대에도 친구들은 20대 중반이 된다니 후반이 된다니 하면서 우울할 때, 나는 다가오는 새해가 그저 기대되었다. 그리고 서른이 될 때도 우울보다 기대가 컸다. 그 해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뜨는 해를 보자며 가기 싫다는 동생을 억지로 설득해 간절곶을 갔다. 떡국도 먹고, 엄청 큰 빨간 우체통도 본 기억이 난다. 내게 나이를 먹는다는 건 그런 의미였다. 어차피 잡지도 못할 시간이기도 했고, 이런저런 생각에 우울해하기보다 다가 올 시간들이 또 어떤 일들을 가져다 줄지 내내 기대하며 해돋이를 보는 나만의 의식을 치뤘다.
    그러다 소위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 그리 기쁘지 않은 건 올해부터다. 한국에 사는 30대 결혼적령기(나는 이 표현이 정말 싫지만) 여성이 되면서 우리 부모님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압박이 오기 시작했다. 어쩌면 막 서른이 되었을 때도, 아니면 그 전에도 그런 압박은 있었겠지만 그 때 나는 남자친구가 있어서였는지, 아니면 지금은 잘 모르겠는 무언가의 당당함이었는지 주위의 시선이나 결혼종용(?)을 잘 모르고 지나갔다. 그런데 올해는 나도 서서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결혼을 빨리 한 남자동기들의 아이들을 보면서, 친구의 아들들을 보면서, 또 어쩌면 나와 친한 여자동료들의 연이은 이별소식(시작은 나였던 것 같다.)이 '나이먹음'에 대해 조급해지기도, 아쉽기도 하다. 주변 시선으로부터의 자유를 원하면서도 한국사회에서 여자가 나이든다는 것에 위축되는 나를 보자니, 앞으로 이 곳에서 계속 살려면 더 강하고 단단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내게 결혼은 나이에 떠밀려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고싶은 사람이 있을 때 할 것이라는 내 소신을 잊지 않고 살기를 또 한 번 다짐한다. 언젠가 이 흰머리를 서로 뽑아주는 배우자가 옆에 있거나, 혹은 에라 모르겠다 하며 서로의 머리카락을 보며 놀리고 위로하고 같이 늙어가는 배우자가 생길지도 모를 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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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de by Jaimieee.